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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리아 (New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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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7-39)

 

1987년 여름 홍콩에서 만난 네덜란드계 미국인 선교사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얼마나 북한을 사랑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사는 한인 동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곳에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야만 한 세대가 지나서 남한의 많은 청년들이 디아스포라 한인들과 함께 북한에 사랑을 전할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순종이 더 많은 사람의 순종을 가져올수 있다면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북한은 계속 분단되어 있고 하나된 코리아로 열방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래 하나로 창조하신 민족이 분단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고 다시 하나로 회복되는 모습은 분명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통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통일은 세계 열방을 하나된 코리아를 통해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고 열방을 향한 코리아의 운명입니다. 지금은 그 하나님의 뜻을 함께 동참하여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일어날 때입니다.

말씀을 전하러 다니다보니 많은 분들이 뉴코리아는 무엇이며 유나이티드 코리아는 무엇이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코리아는 하나님이 원래 지으신 코리아라는 민족과 나라가 구속되고 회복되어 새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연합되어 나라를 위해 중보하는 모습이며, 유나이티드 코리아는 그러한 순종으로 인하여 한반도 전체에 주시는, 하나된 코리아라는 선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뉴코리아를 널리 알려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자고 하였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코리아가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거룩하고 겸손하며 숨겨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뉴코리아를 세우며, 그들을 통해 코리아라는 민족이 구속되고 회복되어, 열방을 축복하기 위한 통일된 유나티드 코리아에까지 이르도록 준비하는데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뉴코리아 운동에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New Korea 1

뉴코리아란 무엇인가?

 

통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를 따라 좌파, 우파, 극좌파, 극우파,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이름들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것이 남한의 현실입니다. 나라의 정치적 통일 정책은 남한이 주도하는 한 나라를 이루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개개인의 의견을 운운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에서 표명하는 통일 정책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제외하고 남과 북만 서로 논의하여 두 체제를 두고 공존하는 한 나라를 이루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는 '통일된 코리아', 곧 'united Korea'는 어떤 모습입니까? 정치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그림입니까?

얼마 전부터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New Korea'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고후 5:17)'이 되는 것처럼, 코리아라는 나라도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되어져야 한다는 진리 위에 그려나가는 그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지고 그분의 영광의 일부를 우리 안에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 땅의 악과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를 창조하신 가장 선한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떨어진 것처럼, 나라들과 민족들도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를 담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 안에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이 땅의 악과 사람의 죄는 나라와 민족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가장 선한 원래의 모습에서 타락한 모습으로 변질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는 우리 개개인을 구속하고 회복하기 원하시는 만큼, 나라와 민족들을 구속하고 회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고 싶어하시는 열정이 있습니다 (계 21:24-26). 코리아도 그리스도 안에 구속되고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배하며, 우리 민족 안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회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이 민족의 특성들을 빛내야 합니다. 이것이 '뉴코리아'라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코리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될 때 통일은 그 그림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원래 하나의 민족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며, 민족의 구속과 회복에 필수적인 상처의 치유와 용서는 통일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뉴코리아는 이 민족을 하나로 회복시키기 원하시고 나아가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게끔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를 우리 민족 안에 이루기 원하는 작은 '사람들'입니다.

'뉴코리아'의 개념을 돕는 두 가지 측면을 소개합니다.

그 첫째는 '무너진 데를 막아설 자'의 개념입니다. 에스겔 2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의 상황이 나옵니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고아와 과부들은 착취당하며, 속임이 만연하고,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며,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고, 선지자들은 거짓을 말하며, 지도자들은 백성을 착취하여 불의한 이익을 취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찾으신 것은30절을 보면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찾지 못하셨기에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기 직전에 아브라함의 청탁대로 그 속에 의인이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읍들을 놔두겠다고 하십니다(창 18). 결국 멸망해야 마땅한 나라나 도시에 '무너진 데를 막아설 자', '의롭게 살 자'들이 충분히 있으면 하나님은 그 나라나 도시를 구원하신다는 결론이 납니다. 이 '무너진 데를 막아설 자', '의롭게 살 자'들이 '뉴코리아'입니다.

둘째 개념은 세상을 따라 사는 나라 속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하나님 나라가 준비되면 하나님이 왕으로 오셔서 그 마음에 있는 일을 행하신다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수많은 강의와 가르침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백성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같이 연합하여 한 나라를 이루겠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나라를 이루자고 연합한 백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왕으로 오셔서 그 마음에 있는 바대로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습니까? 모든 정치적 찬반과 경제적 유익과 손실의 계산을 떠나서, 분열로 인한 상처와 미움의 골이 깊은 한민족이 치유되고 회복될 유일한 길은 어떤 형태로든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는 길이며, 하나님의 마음은 이 땅 모든 민족의 치유와 회복이기에 또한 한민족의 치유와 회복을 가져올 통일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마음을 거침없이 한반도에 행사하시도록, 그분을 왕으로 모실 준비가 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그들이 '뉴코리아'입니다.

2012년 8월에 홍콩에서 어느 집회가 열렸습니다. 중국 교인들 만 6천 명에게 연합과 새 시대를 선포하는 축제였습니다. 집회 전에 이미 중국 지하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의 화합과 용서와 회개와 연합이 일어났었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중국 화교 교회 지도자들이 겸손하게 무릎 꿇고 자기들의 영적 아버지인 지하교회 지도자들을 높여드리고 공경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최고 지도자들은 경쟁심과 경계심을 내려놓고 연합을 선포했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집회에 모인 서양 교회 지도자들은 중국에 세계선교의 바톤을 넘겨주며 엎드려 절했습니다. 힘을 모아 날아달라고, 자기들이 날개 밑 바람이 되어줄테니, 나아가 온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해 달라고 겸손히 부탁했습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강력한 연합은 하나님 마음의 소원이었습니다. 이 연합으로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분명 가까운 장래에 많은 변화를 중국 땅에 가져오실 것입니다. 영적인 변화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다 포함합니다.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있을 것이며, 결국 연합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중국 지하교회의 연합이 역사의 변화를 일으킨다면, 왜 한국은 안 됩니까? 한국 땅에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의 변화를 하나님은 일으키실 수 있습니까? 이 땅에서의 'united Korea'는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위에서부터 일하기로 작정하시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뺀 우리의 전략과 정치적 조정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일하심이 속히 오려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왕이 오셔서 그 안에 거하시며 통치하셔야 합니다. 왕은 왕국이 있어야만 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합이 달리 필요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연합된 왕국을 이루지 않으면 왕은 왕이 아니며 왕의 통치는 강한, 직접적인, 막힘 없는 통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려면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필요합니다. 이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인 '뉴코리아'의 영향력이 충분히 커질 때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은 뉴코리아를 넘어서 한반도에 흘러넘치며 하나님의 마음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뉴코리아'는 이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학개서 1장 2절, 4절, 8-11절을 보면 하나님은 성전의 건축을 미루고 자기 집을 짓기 바빴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연합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집 짓기를 미루고 '우리'의 집을, 하나님이 거하실 연합된 성전을 먼저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집 건설을 잠시 멈추고 남의 사역을 도울 큰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모두 다 하나님이 명하지도 않으신 경주선상에서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뛰고 있습니까? 나의 집을 짓던 연장을 잠시 남의 집 짓기에 빌려주지 않으면 연합이 무엇인지 우리는 결코 깨닫지 못합니다. 서로 집을 지어주려 돕다가 보면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는지 보게 됩니다. 연합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뉴코리아'는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강한 뿌리, 드러나지 않지만 사막의 우물과도 같이 생명의 물을 일꾼들에게 제공해야만 하는, 멸망할 나라를 붙잡고 무너진 데를 막아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강하게 서야만 'united Korea-통일된 코리아'의 일꾼들이 그 기초 위에 설 수 있습니다. 이 나라가 서 있어야만 하나님이 위에서부터 일하셔서 'united Korea-통일된 코리아'라는 불가능한 나라를 실제 이 땅에 세우실 수 있습니다. '뉴코리아'는 '통일된 코리아'의 이름없는 뿌리, 숨겨진 우물, 무너진 곳을 막아선 자들,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미가서 4장 6-8절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저는 자, 쫓겨난 자, 하나님께 고난의 훈련을 받은 자들은 강한 나라가 되고, 여호와가 다스리시는 나라가 됩니다. 이전의 통치의 영역이, 그 권능이, 그 나라가 돌아옵니다. 자신이 저는 자, 쫓겨난 자, 고난의 훈련을 받은 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정치적 구조도, 세상에서 큰 목소리도, 기업들을 움직일 재력도,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불러오는, 어쩌면 사람들은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그런 백성, 그런 나라가 '뉴코리아'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어떤 인간도 멈추거나 그 경로를 바꿀 수 없습니다.

뉴코리아가 '무너진 데를 막아설 자들'이고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뉴코리아라는 무리의 사람들은 어떻게 무너진 데를 막아서며 어떻게 연합을 이룹니까?

 

생각해 볼 질문들

 

1) 나는 현재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모습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구속되고 회복되어져 가고 있습니까? 코리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민족의 모습으로 구속되고 회복되어지는 중입니까?

 

2) 코리아의 구속과 회복은 우리가 손발을 걷어부치고 개혁을 일으킬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충분히 일어날 때 하나님이 왕으로 오셔서 역사의 경로를 주관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3)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경주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입니까? 그 경주선상에서 나는 하나님이 분명히 명하신 대로 남을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New Korea 2

뉴코리아를 이루는 자들

무너진 데를 막아설 자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중보자들-

 

 

뉴코리아는 모세와 같은 중보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14장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정탐 후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자 하나님이 백성을 전염병으로 멸하시고 모세를 들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에 대한 모세의 대답은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이기적으로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의 답에는 좀 더 이타적인 지도자 답게 '저를 들어 강한 나라를 세우지 마시고 온 백성이 함께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라는 등의 자신을 부인하는 문장조차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미래는 이미 그의 일상의 생각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사실 동문서답을 합니다. 모세를 들어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큰 나라'를 운운하지 않고 그 질문 너머의 하나님의 마음의 핵심을 찌르며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합니다. 18-19절을 보면 모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께 그대로 다시 말씀드리면서 이 백성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구합니다. 모세의 답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염려하는 마음, 그리고 백성에 대한 긍휼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 이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운명을 같이 하는 자였고, 자신의 삶을 지워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의 이름과 백성의 세워짐을 중보하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전에 금송아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 밑에서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출 32:10). 모세는 여기서도(출 32:11-13)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어 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과 그 말씀을 하나님께 다시 상기시키면서 그 말씀을 지켜달라고 도전하는 용감한 답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창대케 하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던 언약을 지켜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분노로 이스라엘을 멸하고 싶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또한 그의 언약을 지키시겠다는 결심, 그 이름의 거룩함을 보존하시겠다는 열정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역사의 방향, 그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 그 역사의 진행 방향을 볼 줄 아는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서 모세는 하나님께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려면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기가 막힌 기도를 드립니다(출 32:32). 모세의 중보는 울고불며 애걸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은 큰 나라가 되지 않을 테니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하시겠냐는, 목숨을 건 담판의 중보였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진정한 중보의 삶이 없이는 한 민족 전체의 구속의 역사가 결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이 백성과 친히 같이 가셔야만 한다고 하나님을 강권합니다(출 33:12-15).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고 하나님 자신은 친히 같이 가지 않으신다면 자기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라면 당연히 하나님이 친히 같이 가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것은 물질적 부유도, 자손의 번성도, 삶의 형통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같이 가는 것이 은총을 입은 자의 특징입니다.

뉴코리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통일입니까? 한민족이 통일되어 '선택된 백성'으로 세계에서 엘리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까? 뉴코리아의 목적은 통일 자체가 아니라 코리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같이 가며 하나님이 왕이 되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민족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하나님은 여러 나라에서 믿는 사람들을 뽑아내어 신부로 만들고 다 되었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계시록 21장 24, 26절을 보면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에 들어가며 '만국'이 자기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곳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개개인의 구원도 있지만, 그가 사랑하여 지으신 민족들의 영광의 회복도 있습니다. 모든 민족이 민족으로서 치유되고 회복되며, 비록 멸망하는 자들이 그속에 있겠지만 민족 전체로서는 회복되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자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하는 중보의 삶, 그리고 단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같이 가지 않으시면 우리끼리만 가는데 의미가 없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함께 가심을 목숨 걸고 구하는 삶, 그 삶들이 충분히 있어야만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원 계획이 우리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이리도 잘 알았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대화하는 삶을 오래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삶이 길어질수록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형성됩니다. 나를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기도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런 중보의 길은 돌같은 무게로 우리 삶을 짓누르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며 그가 그 마음을 우리 안에 넣어주실 때, 그 때 우리가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취하면 우리도 모세의 중보를 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중보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며 그와 함께 늘 거하는 은총을 입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뉴코리아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들입니다. 꼭 모여서 철야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이끌리는 삶, 그래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그의 긍휼한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주실 수 있는 삶, 말씀 앞에 두려워 떨며 그 말씀을 지키는 의인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역사를 향한 그분의 언약을 바라보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진정한 겸손으로 서서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친히 가시기를 확인하는 자세로 민족을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얼마나 그의 말씀 앞에 나가며 얼마나 그의 음성에 귀기울입니까? 아니면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내 기도의 전부입니까?

 

2) 나의 생각과 나의 기도의 몇 퍼센트가 나와 가족의 현재와 장래에 대한 것입니까? 내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속되어야만 그 안의 많은 백성들의 삶과 미래가 구속된다는 진리를 나는 깨닫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이 민족과 나라를 위해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중보하라 하실 때 그에 순종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결정들을 나는 내릴 수 있습니까?

 

 

New Korea 3

뉴 코리아를 이루는 자들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

 

 

사람들은 연합이라는 말을 들을 때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립니다. 동아리에서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며 서로 뜻이 맞아 여러가지 활동을 해나가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회사에서 한 비전 아래 모든 직원들이 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유대관계 속에 그 비전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분열되지 않고 화목하게 비전을 따라 움직이는 그림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중보자들이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 뉴 코리아라 했습니다. 그러면 참된 연합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리는 그림처럼 어느 단체나 조직 안에서 한 목적이나 비전을 가지고 영향력 있는 리더 아래 구성원들이 하나 되어 일하고 움직이는 것입니까? 성경은 연합에 대해 무엇을 말합니까?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자신의 제자들 및 자신을 믿게 될 후세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그 기도의 골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11절).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두 가지를 통해 우리가 아버지 및 예수님과 하나 되는 연합에의 비밀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14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예수님은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며 그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습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20절과 30절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판단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말하거나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하나됨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할 기회를, 아버지와 연합될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말씀을 듣고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고 순종할 때 아버지와 연합될 수 있다는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두 번째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요 17:22). 그 목적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써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은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그 삼위일체의 연합 안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23절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면 우리가 온전하게 하나가 된다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연합 안에 들어가 거기 거하면 우리도 하나로 연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연합 안에 들어가는 길은 첫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고(14절), 둘째, 영광입니다(22절).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많은 해석과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핵심적이고 포괄적인 답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계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지혜, 아름다움, 존귀함, 사랑, 거룩함, 심지어 분노까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대속을 통해 그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미치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임재가 직접 우리와 함께 계속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연합의 개념은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체 중심, 사람 사이의 관계 중심, 목적을 추구하는 일과 활동 중심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아버지와 예수님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연합되는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우리가 하나되기를 간구하신 유일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연합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기를 바랍니다. 연합은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말씀과 아버지의 임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때를 알고 순종하면, 우리는 그분과 연합되며 결국 서로가 연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방법이나 때와 맞지 않는 목적을 추구하며 모두가 한 뜻으로 일한다고 해서 그들이 연합된 것이 아닙니다. 수평적인 연합의 모습은 수직의 연합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의 일반 상식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뉴 코리아라는 연합된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일반 상식처럼 한 단체와 한 리더십을 만드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통일된 'United Korea'는 정치적인 형태를 취해야 하겠지만, 그 뿌리가 되는 뉴 코리아는 여러 단체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비전을 추구하되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통해 그분의 뜻과 방법과 때에 순종하며, 따라서 당연히 서로의 유익을 구해주고 도와주고 협력하는 그런 모습일지 모릅니다.

연합의 기본은 말씀이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분의 영광을 체험하며, 우리의 모든 일상 생활과 활동과 일이 그 말씀과 임재에 대한 순종인지 아닌지 검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각조각 뜯어내어 나와 내 단체의 생활과 목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각이 맞추어져 완벽한 질서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에 비추어 그에 어긋난 우리의 모든 생활과 일과 마음을 가차없이 끊고 바꾸어가지 않으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연합이 아닌 예수님이 말씀하신 연합된 몸은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때는 말씀과 임재에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따라야 할 명령으로 받게 됩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마음을 공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때를 순종하는 것은 명령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하지 않으면 그것을 품고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생각해 볼 질문들

 

1) 한국의 그리스도의 몸이 연합되기 위한 기본은 말씀, 그리고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에 연합되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십니까?

 

2) 나의 교회나 나의 단체가 예수님이 유일하게 명하신 요한복음 17장의 연합을 향해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시도할 만한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New Korea 4

하나님의 마음을 받은 삶

-거룩, 겸손, 숨겨짐-

 

 

거룩하고, 겸손하며, 숨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뉴코리아의 기본 정신입니다 (Holy, Humble and Hidden).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소수의 사람의 순종이 다수의 사람에게 축복이 흘러가게 합니다. 창세기를 읽으면 여호와 앞에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묻는 모습이 나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때 여호와께서는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악이 가득한 땅을 멸하기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안타까움으로 하시는 말씀이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합니다. 이제는 그 의인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뉴코리아의 기본정신인 거룩하고 겸손하며 숨겨진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되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님의 임재를 그리워하는 배고픔을 선물로 주십니다 (Hunger for His presence). 그리고 매일매일을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의 임재로 살아갈 때 우리는 다른 것을 구하고 싶은 욕망이 없어지고 오직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됩니다. 모세는 그런 하나님의 임재가 없이는 도저히 이스라엘을 인도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이는 갈 수 없다고 간절히 고백합니다 (출애굽기 33:15).

마지막 세대를 살아나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들이 있겠지만 위에 나눈 3 가지 H (Holy, Humble & Hidden)는 이 세대를 깨우는 리더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뉴코리아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지침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레위기 19:2).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곧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을 온통 주님 생각으로 채울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고 거룩해집니다. 거룩한 사람, 거룩한 생각, 거룩한 사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됩니다 (디모데전서 4:5). 우리의 삶과 생각을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채우는 것은 뉴코리아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거룩함과 더불어 겸손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실질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아닌 겸손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던 아기 예수, 겸손하게 목수 일을 배웠던 예수, 온갖 오해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제자들을 양육하셨던 예수, 아무런 흠이 없으면서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부활하셔서 실의에 빠진 제자들을 위로하셨던 예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기 위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신 예수 (요한복음 20:23, 사도행전 1:5). 예수님의 삶은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2:5).

하나님 안에 숨겨진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의미가 그 안에 있습니다. 첫째는 그동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사람들이 취했다는 사실과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종교를 만들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한 나라까지도 자신들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 대신 자신들을 숭배하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교회가 자기 것인 것처럼 사유화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이들을 보고 슬퍼하십니다 (에베소서 4:30). 우리가 하나님 안에 숨겨져야만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지막 세대에 쓰실 하나님의 용사들이 드러나지 않고 그 때를 위하여 숨겨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사람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매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2:1,2). 그런 사람이 마지막 세대에 하나님께서 쓰실 기드온의 용사 같은 사람(사사기 6)이며 뉴코리아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일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뉴코리안들이 일어나 이 사회와 세계를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뉴코리아 운동은 비단 코리아만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같은 마음으로 뉴 아메리칸, 뉴 차이니스들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그 땅들도 축복해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저희의 기도는 뉴코리안들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통일된 코리아(United Korea)가 선물로 오는 것입니다. 통일된 코리아는 하나님의 뜻이며 열방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여러분을 뉴코리안으로 초청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자 뉴코리아의 기본정신인 거룩함, 겸손함, 숨겨짐을 따라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생각해 볼 질문들

 

1)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때를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거룩하고 겸손하고 숨겨짐을 나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까?

 

2) 거룩하고 겸손하고 숨겨진 삶을 사는 것은 이 세상의 길과는 다른 좁은 길을 걷는 여정입니다. 날마다의 성찰과 기도와 결심이 없이는 가지 못하는 길입니다. 그 길을 선택할 가치가 있습니까? 나는 그 길을 선택하기를 원합니까?

 

New Korea 5

뉴 코리안의 삶의 모습

-거룩함-

 

이사야 선지자는 환상 중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시고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사 하나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6:1-7). 거룩함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악이 제하여지고 우리의 죄가 사하여져 깨끗하고 정결하게 되는 것과 상관이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가 사하여지면 우리의 삶은 절로 거룩해지는 걸까요?

로마서 5장 1-11절, 골로새서 3장 1-17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놀라운 진리 및 그것이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골 3:1-14).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새 생명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롬 6:1-11). 그래서 골로새서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미 죽은 옛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자들처럼 새 사람을 입고 살라고 권고합니다. 죄가 사하여졌음이 거룩하다는 뜻의 전부가 아닙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으로 옷 입고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옷 입어야 하는 거룩함의 모습인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용서 등은(골 3:12,13) 인간의 본성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선택하여 옷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순종의 모습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통의 길을 기꺼이 가신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인간으로서 '아낌 없이', '남김 없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내어줌'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고의 사랑인 모성애도 예수님만큼 아낌 없이, 남김 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내어주지는 못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신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었고, 또한 우리에게 거룩함의 '옷을 입는' 특권을 가능케 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아낌 없는 내어줌은 우리에게 평생 저절로 거룩한 모습으로 살게 되는 마법을 거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실패해도 결국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으로 화하게 되리라는 확신 속에 매일 새 생명과 새 삶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가 거룩함의 새 옷을 입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기에 충분합니다.

실패했을 때 포기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르는 일입니다. 그 남김 없는 내어줌의 사랑과 은혜는 가장 악한 내가 인간 본성의 무게를 지고 사는 이 삶에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날마다 옷 입고 또 입어 그 옷이 내 존재의 일부가 되는 기적을 가능케 하십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모습이자 그 영광이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입을 특권을 부여받았고 또 입어야만 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거룩함은 먼저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의 죄가 정결케 씻어진 것을 의미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옷 입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나의 삶 속에 옛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옛 사람의 특징이 나의 삶 속에 다시 튀어나올 때 나는 어떤 반응을 합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마땅합니까?

 

2)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자의 모습인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에 있어 나는 날마다 조금씩 더 새 옷에 익숙해지고 있습니까?

 

New Korea 6

뉴 코리안의 삶의 모습

- 겸손함 -

 

겸손함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심으로 우리가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본인이 갈 길을 버리고 남을 위하여 권리포기를 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겸손입니다. 분명히 자신의 자리이거늘 그것을 포기할수 있는 용기는 진정한 겸손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값진 삶을 살았다고 칭찬합니다. 전쟁 중에,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자신이 살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의 삶은 진정 숭고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이 하루아침에 쉽게 나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소에도 겸손하여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역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며 십자가에 매일 죽는다는 것은 자기의 권리포기가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개교회주의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하면서 내가 속한 교회만 잘 되도록 기도하고 그것만 추구한다면 아버지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많은 아들과 딸들이 있고 그 많은 아들과 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간의 이기적인 경쟁은 마치 우리의 자녀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신만 돌보며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스스로 더 가지려고 싸우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종종 신문에서 재벌가의 자녀들이 서로 부모의 유산을 더 가지려고 소송을 하는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참 마음이 씁쓸한데 우리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과 경쟁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모습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20)

그러면 진정한 겸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자아가 꽉 차서 그분 한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분이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마음껏 배려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뉴코리안은 이러한 마음으로 나 자신보다는 다른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내 자신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내 형제와 내 자매가 하는 일이 잘 되도록 돕는 마음, 내 교회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교회가 잘 되도록 돕는 마음, 내 단체가 하는 일뿐 아니라 다른 단체가 하는 일에 팔 걷고 나서 함께 도울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들은 내면이 그리스도로 꽉 찬 겸손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할 때 나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성품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하나님과의 친밀감 속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 속에 있을때 우리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나니" (요한일서4:18상) 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려움은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사람이 어떻게 볼까"에 대한 두려움, 또는 "다른사람이 잘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는 두려움 등 우리 환경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두려움을 말합니다.

두려움을 내어쫓는 겸손함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가슴 속 깊이 느끼고 체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뉴코리안들은 매일매일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며 그 십자가 안에 죽기까지 자기를 복종시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삶을 기쁨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의 열매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예수님의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버리신 겸손입니다. 하지만 한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놀라운 권세를 행사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진 권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쌓아온 지식, 지혜, 기술 등을 자신있게 사용하는 것은 겸손에 어긋납니까?

 

2) 나의 삶의 목적과 동기는 나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필요하다면, 나는 때로 나의 위치나 소유나 능력이나 기회를 버리거나 스스로 제한할 수 있습니까?

 

 

New Korea 7

뉴 코리안의 삶의 모습

- 숨겨짐 -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만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49:1-3)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마지막 날까지 숨기시다가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속에 나타내시지 않을까?'

숨겨진다는 개념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소해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너무 많이 가로챘습니다. 천지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자연만물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인 양 모든 영광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욕심도 없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텐데 사람들은 더 많은 것들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에 급급합니다.

우선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녀들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아내와 남편과 부모님을 주신 것을 감사하면 우리의 소유욕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단체, 직장이나 국가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감사함으로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 그것을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다 보니 자꾸만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가정, 공동체, 국가에서 자신의 영광을 취하기 원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뉴코리안의 삶에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주님께서 깨워주시지 않는다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사야 50:4)

갈수록 높아지는 교회의 문턱이나 목회자들과의 만남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낮은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참으로 숨겨져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분이십니다. 내 이름이 높아져야 하고 내 교회의 이름이 높아져야 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높아짐이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나누어 놓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3-6)

숨겨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것들을 매일매일 제거하며 주님께만 온전히 영광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이세상에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의 친밀감 속에서 그분의 손, 그분의 그늘 속에 숨겨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받을 영광을 다 받게 된다면 마지막 때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둔하여서 앞에 드러난 사람들만 알고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비장의 무기에 대하여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위해 숨겨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숨겨진 뉴코리안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매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까지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마치 무선 인터넷 지역에 들어오면 그동안 기다렸던 이메일이 들어오듯이 뉴코리안은 하나님과 같은 주파수에 언제든 연결되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뜻을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13:22)

뉴코리아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새롭게 서는 것도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가 숨겨져서 하나님께만 영광돌릴 때, 십자가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여 겸손해질 때, 십자가의 은혜로만 충분히 거룩해질 때, 뉴코리아는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생각해 볼 질문들

 

1)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고 훌륭한 공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입니다. 나는 이 본능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본능에 역류하고자 자신과 싸우며 살고 있습니까?

 

2) 숨겨진다는 것은 공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까? 은사에 따라 공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여전히 숨겨질 수 있습니까? 마음의 동기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마무리 하는 글

 

북한사역을 한 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남북관계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가 하나되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저 개인의 불순종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불순종에 대하여 저와 저희 공동체에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서 3H(Holy, Humble & Hidden)의 말씀을 주시면서 이것이 뉴코리아를 위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한 니느웨 백성을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처럼 우리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엎드려 그분의 얼굴을 구하면 우리 백성들을 구해주시고 유나이티드 코리아를 선물로 주시리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운동은 전에도 많이 일어났지만 이제는 누구도 드러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새롭게 일어나야 할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한반도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코리아를 사랑하시는 여러분이 뉴코리아를 만들어 나갈 때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한국에서는 부흥한국(대표:고형원)과 미국에서는 AIIM (대표:오대원),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많은 분들이 함께 동역하며 나아갑니다. 부흥한국에서는 뉴코리아 운동에 함께 동역하면서 음반과 통일컨서트, 유나이티드코리아 티셔츠 등을 판매하기도 하고, AIIM에서는 뉴코리아 섬김학교를 통해 사람들을 일깨우고 책자 등을 발행하며 함께 동역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동역하며 이 뉴코리아 운동이 전국적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뉴코리아 운동에 참여하려면...

 

뉴코리아 운동에 참여할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죄에서 떠나십시오. 하나님 한분으로만 만족하십시오. 주위에 아무도 없고 나와 하나님만 있다고 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이 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고 말합니다. 우리가 매 순간을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살아갈 때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매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한순간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또한 매일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그렇게 살면 우리는 분명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닮아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겸손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 즉 권리포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사랑과 순종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참으로 가슴속 깊이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예배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다른 것을 예배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분 한분만 예배하며 만족하는 무리들을 찾고 계십니다. 뉴코리아 운동은 우리 자신은 철저히 숨겨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는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Soli Deo gloria

 

넷째,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한순간도 하나님의 임재가 없이는 못 가겠다고 하나님께 호소했던 모세처럼 우리도 매일의 여정 속에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살면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겸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주님의 임재로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라는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저녁에 잠들 때 "주님의 영과 나의 영이 밤새 교제하고 아침에 제게 말씀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정녕 주님의 임재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다섯째,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면 하나님을 느끼거나 볼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 동네에 살기도 하고 북녘땅에 살기도 하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그와 같이 사랑할 때에 잃어버린 것들을 찾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뉴코리아 운동의 주역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며 코리아라는 민족의 구속과 회복을 위해 중보하고 그리스도의 몸이 연합하자는 운동이 뉴코리아 운동입니다.

이 뉴코리아 운동을 하도록 격려해 주시고 동참해 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미 그런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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